스타트업의 다음 시대정신을 찾아서 Beyond Product
AI가 만드는 비용을 0으로 만들고 있다. 스타트업의 시대정신은 항상 "더 좋은 제품"이었는데, 그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다음은 뭔가?
AI 시대, 제품 너머의 해자를 찾아서

25년 8월 낭만투자파트너스 글에서 제품의 시대가 끝나고 Distribution의 시대가 온다고 썼습니다. 당시에도 창업자분들이 공감했었지만, 이제는 이 상황을 누구나 체험할 수 있고 이 현상의 영향을 어마무시하게 받고 있습니다. AI가 빌딩 비용을 0으로 밀어내고, 카피캣이 일주일이면 나오는 시대. 더 좋은 기능, 더 빠른 속도, 더 예쁜 UI — 이 공식은 점점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관심의 축이 이동한 곳은 배포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배포라는 말 Distribution이 갖고 있는 말의 한계가 참 별로더라고요.
대부분의 Distribution은 전술입니다. 바이럴 캠페인, 콜드 아웃바운드, 그로스 해킹. 다 작동하고 엄청 유효합니다. 하지만 경쟁자가 3개월이면 복사하고 AI를 이용해서 더욱 그 경쟁은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AI가 실행 속도를 10배 올리면, 전술의 수명은 더 짧아집니다.
저는 이 전체 과정을 "Beyond Product"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제품 너머에 있는 것 — 고객에게 도달하는 방식, 고객을 이해하는 깊이, 그걸 시스템으로 만드는 능력. 같은 질문을 추적하는 동료(GTM Specialist)와 팟캐스트도 시작했고 앞으로도 매주 전달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서론은 건너뛰고 진짜 질문은 이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Distribution은 어떻게 생겼는가?
제품이 약해지면, 뭐가 남는가
제품이 약하지만서도 우리의 기억에 남는 대단한 회사들은 다양하게 있습니다.


아정당, 위펀(스낵 24)
우연치 않게 제품 라인업이 정말 다양한 회사를 소개하게 되는데, 이는 AI 이전 시대부터 실제 기업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제품에만 그 가치가 있지 않다는 점을 저희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알아오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제품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하나하나 좋은 가치를 전달하면서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시켜나가나요?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런 원조격의 회사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모두가 욕하는데, 아무도 안 떠나는 회사

블라인드에서 "쓰레기 플랫폼"이라 불립니다. 글로벌 시장인 레딧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한번 도입한 대기업은 떠나지 않습니다. 전임자가 도입한 시스템을 후임자가 이어받아 쓸 정도로 말이죠. 이는 전임자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 만큼 대기업에서 임원들이 우선시하는게 없는데도 분명하게도 사용 효용이 나오는 지점이라는 뜻 아닐까 합니다.

"소프트웨어가 좋아서?" — 사용자가 직접 욕한다.
"기술적 락인?" — 락인만으로는 갱신률과 확장 매출을 설명 못 한다.
"영업을 잘해서?" — 하루 수천 달러짜리를 영업만으로 파는 건 불가능하다.
답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이 회사는 소프트웨어를 파는 게 아니라, "너는 얼마나 좋아지는가"를 팝니다. 왜 이게 가능할까 궁금해서 여러 팟캐스트들을 하나씩 찾아서 들어보니깐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제품이 아니라 전사를 만드는 시스템이더라고요.
FDE: 역할이 아니라 육성 시스템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팔란티어의 직함입니다. 다들 많이 들었을거고 요새는 벤치마킹 하는 기업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직함을 채용 공고에 붙인다고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팔란티어가 만든 건 역할이 아니라 엔지니어를 고객의 현실 안에서 사업가로 변환시키는 시스템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할 수 있지만. 기업들이 어딘지를 보면 참 대단하네요. ElevenLabs Addepar Affirm Anduril Industries Ironclad Kalshi OpenSea Sourcegraph

그리고 팟캐스트를 들어도 분명히 이 FDE로 길러지는 사람들은 물론 채용 당시부터 창업자가 될 기질은 가득했지만 분명한 변화나 성장이 되는 지점이 있다고 다들 증언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FDE를 하나의 직함이 아니라 6층짜리 육성 시스템으로 봐야 이 회사가 이해됩니다. 각 레이어가 하나라도 빠지면 그냥 SI 하청 기업이 됩니다.(물론 지금도 하청회사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것 4가지를 공유합니다.
1. 입사 첫날 받는 책에 코딩 책이 없다
FDE로 입사하면 첫날 책 5권을 받습니다. 그런데 코딩이나 데이터 사이언스 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1970년대에 발행한 책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는 JTBD 까지. 다양합니다.
| 책 | 왜 읽히는가 |
|---|---|
| Impro (Keith Johnstone) | 즉흥연기 교본입니다. 조직 내 권력 역학을 기계적으로 읽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이 스테이터스/로우 스테이터스"라는 개념으로, 회의실에서 누가 진짜 의사결정자인지를 몸짓과 말투로 판별하는 기술 |
| Interviewing Users (Steve Portigal) | 고객이 '말하는 것'과 '의미하는 것'을 분리하는 방법론. "더 나은 대시보드 만들어주세요"라는 요청 뒤에 숨은 진짜 문제를 찾는 기술 |
| The Looming Tower (Lawrence Wright) | 9/11과 정보기관의 실패를 다룬 책. "왜 우리가 여기 있는지"를 코드 한 줄 쓰기 전에 이해시키기 위한 미션 컨텍스트 |
| Getting Things Done (David Allen) | 극도의 자율성 하에서 인지 과부하를 관리하는 개인 운영체제 |
| Principles (Ray Dalio) | 사실 기반 추론, 급진적 투명성. 팔란티어의 조직 문화와 직결 |
8년 FDE였던 Nabeel Qureshi의 증언에 따르면, 팔란티어 내부 언어가 Impro의 용어(캐스팅 등)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이건 엔지니어 온보딩이 아닙니다. 고객을 읽는 사람을 만드는 커리큘럼입니다.
여기서 제가 느낀 건, 이 회사는 Day 1부터 엔지니어에게 "코드를 잘 짜라"가 아니라 "고객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찾아라"는 OS를 설치한다는 겁니다. 제품 너머를 보는 사람을 만드는 시스템의 첫 단추더라고요.
2. 혼자 안 보낸다 — 쌍으로 보낸다
팔란티어는 FDE를 한 명 보내지 않습니다. 두 역할을 페어로 보냅니다.
- Delta: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스페셜리스트. 코드를 짜는 사람
- Echo (외부 명칭 Deployment Strategist): 고객 조직의 정치, 권력 구조, 이해관계자 맵을 읽고 번역하는 사람
둘 다 '엔지니어'라는 직함을 달고 갑니다.
거의 5년간 Echo 역할을 했던 Barry McCardel (현 Hex CEO)은 이렇게 말합니다:
"놀라울 정도로 재능 있는 엔지니어들과 나란히 일했다. 우리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갈 수 있는 최정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FDE로 채용했다. 기술력만이 아니라 창의력, 판단력, 고객 대면 카리스마가 필요했다."
이 쌍이 작동하는 방식이 핵심입니다:
- Echo가 고객의 진술된 요구(Wants)를 구조화된 문제 정의로 번역합니다
- Delta가 그 문제를 현장에서 코드로 풉니다. 최대한 빠르고 고객에게 맞춰서요. 솔루션이 실제 문제를 푸는지 직접 지켜보면서
- Echo가 없으면 기술자가 "요청받은 것"만 만듭니다 → SI 하청
- Delta가 없으면 비즈니스 분석가가 "만들 수 없는 것"을 약속합니다 → 컨설팅
이 둘 사이의 마찰이 고객의 실제 니즈를 삼각측량합니다. 그래서 결국 다른 회사들이 못해주는 역할을 해주는거죠.
3. 줌 콜이 아니라 책상에 앉는다
이게 가장 반직관적인 부분입니다. 실리콘밸리 회사가, 엔지니어를 주 3-4일 고객 사무실에 출근시킵니다. 이제는 익숙할수도 있지만 이걸 가장 앞세운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이라고 생각한다면 확실히 독특합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무엇을 가장 앞세우고 차별화하나요?
"FDE는 일반적으로 고객 사무실에 가서 주 3-4일 그곳에서 일하도록 기대받았다. 엄청난 양의 출장을 의미했다. 이것은 실리콘밸리 회사로서는 극도로 이례적이었다."
"팔란티어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오하이오주 톨레도의 제조 공장에서 몇 달을 보냈다. 20년 이상의 도메인 전문성을 가진 운영자들과 함께 앉아 그들의 학습을 코드화했다."
왜 이게 기업 내에서 얼마나 시스템에 새겨져 있나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250명 이상의 FDE를 훈련시킨 Vinoo Ganesh:
"현장이 진짜 교육이 일어나는 곳이다. 나머지는 전부 준비일 뿐이다."
원격근무가 일상화 되고 모든 외부미팅을 콜로 하고 있는 미국이고 리모트 시대에 이건 역행처럼 보이지만, 팔란티어는 이 역행이 해자라는 걸 20년간 증명했습니다. 고객이 말할 수 없는 것은, 고객 옆에 앉아야만 배울 수 있습니다.
4. 매 계약이 무기를 날카롭게 만든다 — SI와의 결정적 차이
여기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GTM과 같은 요소를 생각한 성장 Loop입니다.
SI(시스템 통합) 하청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2년 개발구축 + 5년 유지보수. 계약 종료. 다음 프로젝트. 반복. 학습은 사람 머릿속에만 남고, 조직으로 축적되지 않습니다.
FDE는 다릅니다. 이것이 전체 시스템의 가장 정교한 요소입니다:
1. FDE가 현장에서 플랫폼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만남
2. 고객 환경 내에서 커스텀 솔루션을 구축
3. 솔루션이 작동하면 (고객이 실제로 사용하면) 플래그
4. 중앙 PD(Product Development) 팀이 일반화 가능성을 평가
5. 일반화 가능하면 → 플랫폼 코어 기능으로 흡수
6. 다음 FDE 팀은 더 빠르게, 더 적은 커스텀으로 배포
7. 각 사이클이 플랫폼의 기저 역량을 올림
"고객 배포는 새 기술의 시험장이었다 — 작동한 것들은 코어로 마이그레이션됐고 Dev 팀이 인수했으며, FDE들은 다음 프론티어 문제를 찾아 퍼져나갔다. 이 개발 사이클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일어났다."
이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Distribution"의 실체입니다. 매 현장이 제품을 강화하고, 강화된 제품이 다음 현장을 더 쉽게 열어주는 복리 루프. 물론 항상 현장에서 싸우고 정답은 없으니 서로 제품팀과 FDE들은 계속된 긴장 관계를 만들어왔지만 그 자체가 기업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 SI 하청 | FDE | |
|---|---|---|
| 프로젝트 끝나면? | 아무것도 안 남음 | 플랫폼이 강해짐 |
| 가격 기준 | 맨아워 (시간당) | 아웃컴 (고객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
| 엔지니어는 | 요구사항 수행자 | 문제 공동 정의자 |
| 학습은 | 사람 머리에만 | 플랫폼으로 역류 |
| 시간이 지나면 | 같은 자리 | 복리로 강해짐 |
이 시스템이 만든 것
숫자로 보겠습니다.
| 지표 | 수치 |
|---|---|
| 팔란티어 출신 창업 스타트업 | 350개+ |
| 누적 투자금 | $34B+ (약 45조원) |
| 유니콘 | 15개+ |
| Pre-Seed 이후 생존율 | 94% |
구글 직원이 팔란티어의 50배입니다. 그런데 YC 배치에서 ex-Palantir 창업자가 더 많이 보입니다. 이건 그냥 좋은 사람을 뽑아서가 아닙니다. 시스템이 사람을 변환시킨 결과입니다.
Concept VC의 팔란티어 스핀아웃 분석을 보면, 이 창업자들에게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 방(기류)을 읽는 능력: 다양한 고객 조직에서 정치를 내비게이션하며 습득
- 산업 언어 유창성: 고객 환경에 수개월 임베드되며 체득
- 빠른 배포 문화: PRD 없이 수일 내 솔루션 배포. 일반적인 회사에서 PRD 확정에 몇 달 걸리는 걸 팔란티어에서는 수 일 만에 했다는 증언
- First Principle 사고: "공식과 플레이북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을 권한을 준다"는 거부
FDE 시스템은 팔란티어의 매출만 만든 게 아니라, 차세대 창업자를 양성하는 시스템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Distribution은 전술인가, 시스템인가?
팔란티어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핵심은 팔란티어가 대단하다는 게 아닙니다.
핵심은 이 질문입니다:
지금 당신의 GTM - 영업 활동에서, 현장에서 배운 것이 시스템으로 역류하는 구조가 있는가?
| 전술 (Tactic) | 시스템 (System) | |
|---|---|---|
| 복사 가능성 | 경쟁자가 3개월이면 복사 | 구조적으로 복사 불가 |
| 시간과의 관계 | 효과가 감소 |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짐 |
| 학습 | 일회성 | 매 실행이 다음을 강화 |
지난 글에서 소개한 사례를 이 기준으로 다시 보면 n8n의 오픈소스 생태계(GitHub Stars 12만+)는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매 기여자가 플랫폼을 강화하고, 강화된 플랫폼이 다음 기여자를 끌어오니까요. 위펀의 B2B 인바운드 노하우도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터가 쌓이는 구조라면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반면 바이럴 캠페인은 전술입니다. 한번 터지면 대단하지만, 다음번에도 터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팔란티어는 20년과 피터틸이 있었습니다. 그걸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방향은 배울 수 있습니다.
없다면, 아직 전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전술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전술만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해자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 질문을 계속 추적합니다
이 글은 Beyond Product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시작됐습니다. "AI 시대에 고객에게 도달하는 두 가지 철학"을 주제로 GTM Specialist 최현종과 나눈 대화에서, 팔란티어의 FDE를 파다 보니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걸 나눴했습니다.
팔란티어는 "사람을 보내는" 방식의 극단입니다. 그런데 정반대 "도구를 보내는" 방식으로 같은 것을 해낸 회사가 있습니다. 150개 데이터 소스를 통합하고, GTM Engineer라는 새 직군까지 만들어낸 회사. Clay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살펴보세요.
그리고 계속해서 이 주제에 관심있는 분들과 조금씩 만나보려고 합니다.
3/17 저녁에 열 몇분의 GTM에 관심이 있는 분들끼리 만나서 각자의 사례를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 만들어봤습니다.

